The Others/경제. 금융 이야기

미국의 청소년 금융교육 실태 및 시사점 - 박 철 / 국민은행 연구소 전문연구원

High Light 2009. 2. 8.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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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신문에서 ‘청소년 경제교육 붐’이란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최근 들어 10대, 20대 신용불량자 급증 등 청소년들의 금융문맹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제기되면서 이제 우리 사회에도 청소년 금융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컨센서스가 형성되고 있는 듯 하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신용위기는 금융교육의 부재에서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선진국과 비교할 때 국내에서의 청소년 금융교육은 프로그램의 규모나 체계성, 컨텐츠의 양과 질을 감안할 때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에 불과하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보다 훨씬 앞서 청소년 금융교육을 본격화한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하겠다.

미국은 금융문맹국가?

미국은 1990년대 이후 만성적인 저축률 저하와 개인파산의 급증 등 경제문제의 타개를 위해서는 근본적 원인이라 할 수 있는 ‘금융문맹(Financial Illiteracy)’의 해소가 필수적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미국의 청소년 금융교육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미국에서 청소년 대상의 금융교육 프로그램이 활성화된 데는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 청소년의 금융지식 수준 및 금융교육 프로그램의 효과에 대한 일련의 심층적인 연구 및 조사결과가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1997년 미국의 민간 금융교육 전문기관인 점프스타트(Jump$tart)는 충격적인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점프스타트가 우리의 고3학생에 해당하는 12학년생을 대상으로 금융지식 수준을 조사한 결과 학생들의 금융지식 수준이 형편없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금리와 주가와의 관계’ 등 기초적인 금융지식을 묻는 항목에서 학생들의 대다수가 낙제점을 받은 것이다. 특히 여성, 유색인종 등 소수집단의 금융지식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남으로써 금융지식의 차이가 계층간·집단간 소득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주요인이 될 수 있음을 극명히 보여주었다.
또한 개인 파산율이 낮은 주의 학생들은 평균 득점률이 70.3%인데 반해 개인 파산율이 높은 주의 학생들은 53.6%에 그쳐 현격한 격차를 나타냄으로써 성인들의 금융문맹이 유전되고 있다는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또한 경제조사청 역시 흥미로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15년~20년이 경과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저축률의 차이를 조사한 결과, 고교시절 금융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평균 저축률은 8.5%인데 반해 금융교육 이수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7.0%에 그친 것이다. 그런데 미국저축교육협회(ASEC)의 조사에서 고교생 및 대학생의 21%만이 금융교육 이수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들을 보고 미국의 지도층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실제로 1997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의장인 아더 래빗은 “미국은 현재 금융문맹 상태에 놓여 있다.”라는 충격적인 말을 했다. 상원의 은행위원회 의장이었던 다마토 의원 역시 대정부 연설에서 청소년 금융문맹과 이에 따른 개인적·사회적 폐해의 심각성을 지적하면서 금융교육 프로그램의 정규 교과 과정화, 금융교육 교재에 대한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DB 구축, 금융지식 조사의 정례화 등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지원을 촉구하였다.

금융교육이 개인과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

지금 미국 사회를 지배하는 키워드는 ‘금융교육’이다. 미국 사회는 금융교육이 소득재분배를 통한 사회정의의 실현,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 소비자후생 증진 등 다양한 편익을 가져다 준다는 인식에 공감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지도층은 개인이나 국가의 경제적 성공은 금융이해력(Financial Literacy)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다. 이제 금융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경제의 중추를 이루는 동맥이기 때문이다.
“금융교육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데 어떤 제약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심어주고 꿈을 현실화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 준다.” 부시 미 대통령이 금융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 말이다. 결국 금융교육이 빈부 격차 해소와 기회의 균등을 보장할 수 있는 근본적인 처방이라는 것이다.
또한 미국의 지도층은 국민의 금융지식 수준이 금융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결정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현명한 금융소비자가 많아야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지금 모 그룹의 분식회계 문제로 우리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지난해 미국이 겪었던 엔론 사태에 버금가는 충격이다. 그런데 앨런 그린스펀 의장은 엔론 사태와 관련한 의회 증언에서 “그것은 회계관행의 문제가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금융문맹에서 찾아야 한다.”라는 의외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이어진 그의 설명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엔론의 회계부정이 가능했던 것도, 그렇게나 많은 투자자가 손실을 입게 된 것도, 모두 미국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금융문맹에 따른 결과라는 것이다.
또한 소비자 후생(厚生) 증진을 위해서도 반드시 금융교육이 필요하다. 오늘날 금융 소비자들은 복잡해지는 다양한 금융상품에 노출돼 있다. 이런 환경에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금융상품을 고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금융지식이 필요하다. 기본적인 금융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엄청난 손실로 이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폴 오닐 전 미재무부 장관은 “오늘날 사람들은 다양한 금리, 일반화된 신용카드 사용, 파생금융 상품의 확산 등 복잡한 금융 환경에서 살고 있다.”면서 “보다 정확한 투자 정보를 알기 위해서 기초적인 금융지식 습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지원

이러한 금융교육의 필요성에 따라 미 정부와 의회는 관련 법안의 제정 및 재정적인 지원을 통해 청소년 금융교육 프로그램의 개발 및 확산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9년 5월 금융서비스 이용에 있어 소비자 권리의 강화를 위해 의회에 제안한 법안에서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경제위원회(NEC)로 하여금 전 국민의 금융지식 수준을 함양할 수 있는 방안을 수립하도록 지시하고, 금융교육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한층 강화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였다.
특히 학교 중심의 금융교육 프로그램 추진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교육부가 Jump$tart 등 금융교육 전문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학교 대상의 금융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보급에 역량을 집중할 것을 주문하였다.
2002년 취임 직후 부시 대통령이 서명한 『어떤 어린이도 낙오자로 만들지 않는다(No Child Left Behind)』라는 법률 역시 각급 학교에서의 경제교육, 금융교육, 소비자교육의 강화를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미 의회 역시 「경제교육법안(Economic Education Act)」, 「조기금융교육법안(Youth Financial Educa―tion Act」 등 관련 법률 제정을 통해 금융교육 프로그램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특히 「조기금융교육법안」은 교육부 장관에게 주정부의 교육기관이 유치원 및 초·중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금융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향후 5년간 금융교육에 총 5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정부기관 역시 청소년 대상 금융교육에 역점을 기울이고 있다. 2001년 미 재무부는 수학과 금융교육을 접목시킨 중학교용 교재인 『Money Math』를 제작, 16,000개 학교 110,000명의 교사들에게 배부한 바 있다. 또한 2002년 6월에는 ‘금융교육실(Office of Financial Education)’을 신설함으로써 어린이와 청소년을 주대상으로 하는 금융교육에 대한 의지를 구체화했다.
미 교육부 역시 학교저축 프로그램인 ‘Save For America’를 후원하고 있으며, 2002년 8월에는 학교대상의 금융교육 커리큘럼 정비, 금융교육 교재 개발 등의 지원을 위해 Jump$tart에 25만 달러를 기부한 바 있다. “인생의 성공을 보장하는 가장 중요한 교육은 돈 관리다.”라는 로드페이지 장관의 말에서 금융교육에 대한 교육부의 의지를 뚜렷이 엿볼 수 있다.
또한 일부 주에서는 연방정부와는 별개로 독자적인 청소년 금융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 프로그램으로 일리노이주의 ‘학교은행(Bank at School Program)’, 아칸사스 주정부가 운영하는 ‘젊은이를 위한 돈 관리(Money Management for Youth Program)’, 메사추세츠주의 ‘저축으로 돈을 모은다(Saving Makes Cents Program)’ 등이 있다.

민간단체의 역할이 두드러져

미국 청소년 금융교육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비영리단체가 금융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보급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미국에는 금융교육을 전담하는 140여 개가 넘는 많은 비영리기관이 있다. 대표적인 단체로는 NEFE(전국금융교육기금), NCEE(전국경제교육연합회), 점프스타트(Jump$tart) 등이 있다(【표】 참조).

 

금융교육, 경제교육, 기업가 교육 

국내에서는 아직 금융교육의 내용이나 범위에 대해 뚜렷한 스탠더드가 정립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경제교육’과 동일한 개념으로 혼용되거나 경제교육의 틀 내에서 금융과 관련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개인적으로 ‘경제교육’보다는 ‘금융교육’이란 말을 선호한다. 언뜻 같은 말처럼 생각되기도 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금융교육과 관련된 테마는 크게 3가지 분야로 집약할 수 있다. 경제교육, 금융교육, 그리고 기업가교육 또는 창업교육이다. 결국 이러한 교육들이 추구하는 공통점은 ‘돈’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고 경제인 또는 사회인으로서 요구되는 현명한 의사결정 능력을 배양하는 데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교육의 내용이나 focus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경제교육은 ‘Economic Edu―cation’, 금융교육은 ‘Financial Education’, 기업가 교육은 ‘Entrepreneurship Education’으로 용어상의 구분을 하고 있다.
우선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경제교육은 다소 학문적인 성향이 강하다. 교육내용에 있어서도 경제교육은 수요와 공급, 기회비용, 한계효용 등 실생활과 직결될 수 있는 경제학적 개념들을 주로 다루지만 금융교육은 저축의 중요성, 합리적 소비, 신용관리, 금융상품의 특성 및 선택기준 등 말 그대로 금융과 관련된 내용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실제 교육 주체 역시 경제교육은 학계나 연방은행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금융교육은 금융기관이나 점프스타트 등 민간 비영리단체가 주축이 되고 있다. 따라서 금융교육과 경제교육은 커리큘럼의 체계나 내용에 있어서도 분명한 차이가 있다.
경제에서 차지하는 금융의 비중이 커지고 실생활 중심의 교육이 강조되면서 미국에서는 최근 금융교육이 보다 더 부각되고 있다. 경제교육에 있어서도 금융관련 내용의 비중이 강화되는 추세이다.
실례로 지난해 미국 경제교육 단체를 대표하는 전국경제교육연합회(NCEE)의 컨퍼런스 주제는 ‘경제와 금융이해력(Economic & Financial Literacy)’이었다. 또 동 협회가 최근 제작한 교재의 명칭 역시 『생활에 필요한 재무능력(Financial Fitness for Life)』이었다.
이런 분야의 교육 프로그램 중 비교적 최근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업가교육은 시장경제의 메커니즘 및 기업의 역할, 사업계획서의 작성에서 세금문제에 이르기까지 기업경영에 필수적인 제반 지식들을 다루고 있다.
우리 나라에 많이 알려진 미국 3대 금융교육기관 중 NEFE는 금융교육, NCEE는 경제교육, JA(주니어어치브먼트)는 기업가교육을 대표하는 단체라 할 수 있다.

문맹의 새로운 개념 정의가 요구돼

이처럼 지금 미국 사회는 돈에 대한 가치관의 정립은 단시일에 가능한 게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교육을 통해 생활화할 때 그 성과가 나타난다는 인식 하에서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 전체가 혼연일체가 되어 체계적인 금융교육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지난해 11월말 현재 10대 신용불량자는 6,981명, 20대 신용불량자는 무려 46만 3,624명이나 된다. 학교와 사회, 그리고 가정의 무관심 속에서 우리의 많은 청소년들이 ‘금융문맹’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일부 젊은이들의 탈선과 방종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지금껏 우리 사회가 이들을 금융문맹자로 방치해왔기 때문이다.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 어디에서도 돈의 소중함과 제대로 돈을 쓰고 모으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결국 청소년 금융문맹의 원인은 부모의 무관심, 현실과 괴리된 학교 경제교육, 신용불량을 부추기는 소비문화 등 어느 한 부분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와 기성세대의 총체적인 책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은 언제나 발전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관점에서 출발한다. 청소년들로 하여금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는 것이 교육의 최우선적인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청소년들에게 돈의 의미와 사용법, 신용카드 빚의 무서움, 나아가 올바른 신용관리 방법을 가르치는 것은 인생에서 정말 필요한 교육이 될 것이다.
그러나 돈이나 신용에 관한 올바른 가치관을 세우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더 조기교육이 중요하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우리 청소년들의 금융이해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종합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돈’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 관념은 ‘아이들은 돈을 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금융이나 경제에 관한 지식은 연령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 ‘생활면허증’이 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에도 문맹의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내일의 문맹은 그저 읽고 쓰지 못하는 삶이 아니라 ‘돈’과 ‘금융’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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