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작가소개와 넋두리

[리치에셋] 작가 인사말

High Light 2009. 6. 1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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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리치에셋 시리즈를 구매하여 주신 고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리치에셋 시리즈를 만들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저는 리치에셋 시리즈를 구성한 작가 ‘고 명’입니다.

이 지면을 통해 제가 가진 작은 이야길 여러분께 하려 합니다.

저의 고조 할아버지께서는 제주고씨 화전군파 32대손으로써 경남 남해에서 한의원을 하시면서, 조상을 섬기고,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잘 따르는 아들 두 형제를 슬하에 두셨습니다.
장남인 저의 조부님은 고조할아버지의 강권으로 일본 동경에서 대학을 나왔지만, “ 당시에 일본에서    가르치는 역사는 올바른 역사가 아니다.” 하시고, 시험지를 백지로 제출하는 강단을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그런 할아버지께서 6.25전쟁 이 후 집안을 헐뜯는 자들에게 남침한 공산군에게 끌려가 서무일을 도왔다는 명목으로 옥고를 치루셨지요.
할아버지께서 옥고를 치르는 동안 남아있던 가산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이 후 할아버지께서는         경남 마산의 경남대학교에서 법대 교수를 하셨지만, 가정 경제를 원만하게 책임지지 못하셨습니다.
병약한 몸으로 수년의 옥살이로 인하여 약해지신 할아버지는 자주 병치레를 하셨고, 이 때문에 어려운  집안 경제를 세우신 분은 저의 할머니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1940년 꼬장꼬장한 한의원 집안의 맏며느리로 15세에 시집오셔서 전쟁 이 후, 기울어진 가세를 바로잡기 위해 미군들이 보내온 지원물자를 떼어다가 파는 일을 하시며, 경제적 가장으로 저의 아버지 5남매를 훌륭히 키우셨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어려운 집안 형편이었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꿈은 5남매를 훌륭히 공부시켜 나라에 큰 일꾼으로 키우는 것이 목표셨고, 아버지 형제들은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여 마산고와 마산여고를 졸업하여 서울대학교 공대, 상대, 약대를 졸업하고, 고모님은 영문과를 졸업하여 지방 법원장을 하시는 고모부와 결혼하였습니다. 이렇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자식에 대한 꿈은 모든것이 이루어 진것처럼 보였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농부가 꿈이셨습니다. 1960년 초에 먹을 것이 없어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려운 백성을 위해 농부가 되어 먹지 못하는 설움을 벗는 것에 도움을 주고자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서울 농대의 꿈을 접고, 어려운 집안 형편을 도우라는 할아버지의 권유로 할아버님이 교편을 잡으신 경남대학교 법대에 4년 전액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저의 할아버지께서는 선비의 성품을 타고 나셔서인지 집안 경제의 어려움에는 관여하지 않으시고, 오로지 연구와 책읽기에만 전념하셨습니다.
경제권을 책임지신 할머니는 아버지 형제의 대학 학비를 위해 지금의 삼성생명의 전신인 동방생명에서 부터 지금의 삼성생명에 이르러 보험설계사로 일하셨습니다. 마산은 예로부터 물이 좋아서 지방명산물인 몽고간장이 유명합니다. 장맛은 결코 맛이 변하면 안된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80세까지 마산명물 몽고간장처럼 변함없이 마산시장의 어려운 상인들의 벗이며, 어머니며, 아주머니였습니다.

마산 고교수 집안, 마산 김씨보험할매라는 타이틀은 우리집의 메인 타이틀 이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적 할머니 별명인 보험할매라는 말이 너무 듣기 싫었습니다.
아침마다 보험 가방을 들고, 마산시장의 어려운 이웃을 찾아 다니시는 할머니가 챙피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대법원에서 공직 생활을 하실때에도 삼촌들이 기업의 임원을 하실때에도 할머니는 낡은 보험 가방을 들고 어려운 이웃을 찾는 일을 그만두지 않으셨습니다.
40년간을 오로지 어려운 이웃이 되어오신 할머니께서 2년 전 소천하셨을 때 할머니의 유품속에서 오래된 수첩 뭉치들을 발견하였습니다.
수첩에는 빼곡히 보험을 가입한 마산 시장 사람들의 생일이며, 가족, 제삿날, 주소와 생활모습들을 간단하게 적은 메모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님은 그들의 삶이 어렵고 힘들 때마다 자식들에게서 받은 생활비를 조금씩 나누어 그들을  도운 흔적이 여기 저기 발견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종종 장맛이 변하면, 버려야 하듯이 사람도 변하면 못쓴다는 말씀을 종종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의 의미를 지금에서야 알것 같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매우 낙천적이셨습니다. 낙천적인 성격 덕분에 가정의 어려운 일들도 억척스럽게 잘 헤쳐 나오신것이겠죠. 하지만, 할머니의 소탈함과 털털함에 비유맞추기가 힘든것은 집안에 며느리되신 저희 어머니와 숙모님들 이셨습니다. 무조건적인 희생의 표본 잣대를 그대로 적용하셨지요.
집안의 가풍이 있으나, 소통이 원할하지 않으면, 문제는 발생하는 법이지요.
엄격한 유교집안인 저희 집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꿈이 있었고, 자식들을 훌륭히 교육시켰지만, 가족간의 의사 소통이 원할하지 않았던 것 때문에 서로 각자의 길을 가느것에만 급급하여 가족의 유대감을 잃었습니다.
제게 소원이 있다면, 누구보다도 서로를 잘이해하는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다시 하나되어 끈끈하게 보듬을 수 있는 날이 다시 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꺼내기 힘든 저의 가족 이야기를 여러분께 들려 드리는 이유는 제가 우리 가족에게만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는 이런 일들이 바로 여러분의 가족에게도 비슷하거나 유사하게 있다는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희 할머니 할아버지는 꿈이 있었으나, 그 꿈은 한계가 있었고, 공유되어지지 않았으며, 지속적이지 못했습니다.
자식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으나, 삶의 지위가 변화되어갈수록 다양한 문제들로 반목되어 왔습니다. 저의 부모님께서도 그 누구보다도 저의 형제들을 사랑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도 부모님도 가족내에서 소통의 방법은 익숙하지 못했습니다. 소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 지지 않음을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저는 가족의 소통문제가 매우 중요하다는것을 깨달았습니다. 더불어, 가족의 소통은 지속적이어야 하며, 중단되어지면, 바로 병이 되는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리치에셋게임 시리즈를 만들면서, 제게는 소명이 생겼습니다.
리치에셋은 자산을 운용하는 방법과 재무목표를 세워 가족의 꿈을 이루는 방법을 교육하는 게임입니다.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가 경제활동을 통해 돈을 버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르는 아이들과 가족의 이야기를 나누는 소통의 게임입니다.
저는 게임을 통하여 자녀들이 왜 공부를 하고,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남을 위해 사는 삶의 목표를 세워 주고, 아이들의 꿈이 무엇인지 함께 이야길 나누며, 자녀들과 가족의 비전을 세워 나가길 바랍니다.
게임을 통해 왜 아빠가 힘든일을 하는지 아는 자녀들이 되길 바라며, 엄마가 자녀들을 위해 희생하는 이유를 자녀들이 잘알기를 원합니다. 더불어 부부간에도 아내가 무엇을 원하고, 남편이 무엇을 소망하는지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갖기 원합니다.

리치에셋은 이런 소통의 도구가 되길 원합니다.
리치에셋을 통해 MISSION of FAMILY LIFE (가족 삶의 목표)와 CALLING(소명)에 대해 생각해 보고, VISION(꿈)을 세우는 계기가 되길 희망합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어려움이 와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인내하며, 주변의 어려운 이들을 돌보는 여유를 가집니다. 바로 여러분이 그런 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리치에셋 시리즈 작가

고명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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