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에셋] 고금리회장(High Golden)'s Stroy
아들 고호와 손자에게.
나는 고금리(高金理).
조선의 제주가 근본인 제주고씨의 후손이다.
내 선친께서는 조선 한양의 남대문 시전 상인으로 큰 약재상을 하셨는데, 내게 항상하신 말씀이 뿌리를 잊지말라는 말씀과 돈(金)이 세상의 힘이라는 말씀을 항상 하셨다.
20대 젊은 피가 끓어오르던 시절에 조국은 일제의 강제 점령으로 나라를 잃었다. 일제의 총칼에 힘없는 우리 백성이 맥없이 당하는 것을 보았고, 우리나라의 가장 큰어른이신 임금께서 나라잃은 한을 품고, 떠나가는 것을 보았다.
힘이 없다는것이, 무력 앞에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이 원통하였고, 원통하였다.
난, 친구들과 함께 미국선교사가 가르치는 학당에서 힘잃은 우리나라보다 큰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힘있는 나라에 가서 힘을 얻어야 우리나라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친한 친구였던 재동이와 귀남이와 함께 미국이라는 나라에 가서 우리의 꿈을 펼치자고 하였다.
그리고, 결심을 굳히고, 아버지께 큰 나라에 가서 선진문물을 배워 오겠다는 말씀을 드렸다.
아버지께서는 한참을 고민하신 후에 내게 집안의 가보인 황금 두꺼비를 내 주시면서, 큰나라에가서 꼭필요한 일꾼이 되어 돌아오라는 말씀을 하셨다.
1920년 23세의 나이로, 부산항에서 친구들과 함께 우리나라를 떠나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
3개월 동안 배를 타고, 미국 LA에 도착해서 철도회사의 잡역부로 들어가게 되었다.
말도 통하지 않고, 동양인을 짐승같이 취급하는 백인들의 횡포에 셀수없는 죽음의 고비를 넘겨야만 했다.
철도회사 잡역부로 일하는 동안 나중에 알고 보니, 중국계 노예상인들이 영어를 알지 못한다는 우리들에게 일자리를 주겠다는 속임수를 써서 우리를 노예계약서에 서명하게 만든 후, 미국인들에게 우리들을 팔아넘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지옥같은 곳을 빠져나와 동쪽을 향해 머나먼 길을 걸어서 뉴욕으로 향했다.
뉴욕 빈민촌에서 기거하면서, 선교사가 알려준 빈센트씨를 수소문하여 선교사가 써준 추천서를 내밀었다.
빈센트씨는 사회사업가로서 선교사 제임스를 후원하여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빈센트는 나와 친구들을 자신이 운영하는 방직회사에 입사시켜주고, 영어와 기타 공부를 위해 야간학교에 입학 시켜 주었다.
6년간을 그의 밑에서 일하면서 난 전문대학과정까지 모두 마치게 되었다.
회계학을 전공하였던 나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유태인이 운영하는 은행에 입사원서를 넣어, 리치맨이 운영하는 리치뱅크에 입사하게 된다.
리치뱅크는 유태인 리치맨이 운영하는 고리대금을 운영하는 사채회사였다.
나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상재의 능력을 리치맨에게 인정받아 그의 딸 애밀리와 결혼을 하게된다.
사랑스런 여인 애밀리는 타고난 여장부였다.
나는 나의 이름을 High Golden이라고 개명하고, 애밀리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을 고호(High Lion)라고 이름 지었다.
나의 아들 고호는 애밀리의 성격처럼 호탕하고, 강하면서 추진력있는 청년으로 성장하였다.
리치맨은 68살의 나이로 죽음에 이르게되자, 외동딸인 애밀리와 사위인 나에게 그의 은행을 물려 주었다.
아들에게 경영학을 전공하게 했고, 아들과 함께 뉴욕에서 큰 금융재벌가로 성장하게 되었다.
고호(High Lion)와 나는 2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 미국의 전쟁 참전을 초읽기에 앞둔 싯점에 포드자동차와 US스틸사에 투자를 하여, 전쟁 특수를 통해 막대한 투자이익을 얻게 되었다.
나는 일본의 압제에 신음하는 우리 동포들을 해방하기 위해,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승만박사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의 확실한 국가 독립 의지를 지지하였으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 필요한 자금을 끌여들여 투자하였다.
우리나라가 일제로 부터 독립하고, 다시 나라의 기틀을 세울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고 믿던 우리에게 또다시 나라의 전쟁 소식이 들려 왔다.
형제의 전쟁, 남과 북이 둘로 갈라져 서로를 향해 또다시 총칼을 휘둘렀다.
그리고, 3년 후 나라는 완전히 둘로 나뉘게 되고, 세계에서 가장 헐벗은 빈민국이 되어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사랑하는 아들과 손자에게 이글을 쓰면서 내가 사랑한 조국을 너희도 사랑하기를 바란다.
나라를 잏고, 다시 찾았고, 또 둘로 나뉘었다.
그리고, 한참 후 아버지가 사랑했던 고향 제주를 찾았다.
그곳은 아버지가 에전에 말씀하셨던,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나는 나의 고향이었다.
아들아, 손자야 보아라.
아비가 힘이없었을 때에 당하였던 설움을 잊지말아라.
나는 돈이 금력이 곡 힘이라 생각했다.
내 평생에 돈을 위해 일했고, 나에게는 돈이 있다.
하지만, 이제와서 생각해 보니 다 부질없는 것이 돈이다.
성경의 다윗과 솔로몬의 영광도 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도다라고 하였다.
돈이 많으면 무엇을 하겠는냐.
아들아, 너는 내가 모은 돈을 사람들에게 유익하게 하는것에 쓰도록 하여라.
그리고, 나와 너의 어미 애밀리가 함께 키우고, 네가 자란 이 회사를 키우도록 하여라.
나라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도록 하여라.
내가 너에게 나의 고향 제주를 부탁한다고 말하고 싶다.
내 아버지의 땅에 나를 묻어 다오.
사랑한다. 나의 후손이여.
1962년 어느 여름 즈음에...
고금리 씀.